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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버려진 재료로 참신한 작품을 만들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전하는 환경작가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바다와 땅에서 직접 버려지는 것을 모아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혁신적인 예술가이자, 진정한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김덕신 환경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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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신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손재주가 있었다. 종일 혼자서 논두렁 진흙으로 온갖 것을 만들며 놀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할머니는 ‘논두렁 밑에 애기’, 즉 올챙이라고 불렀다. 손재주가 좋았던 김덕신 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도 미술 재료로 돌, 솔방울, 빈 박스 등을 활용한 자연 소재나 폐품을 자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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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에게 아홉 살의 어린 학생이 ‘선생님! 왜 환경교육은 우리만 해요? 우리 엄마도 했으면 좋겠어요. 휴지심이랑 과자 상자를 모아뒀다가 재료로 쓰려고 하면 엄마는 자꾸 쓰레기라며 버려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그래? 그럼 우리끼리 고민해보고 방법을 찾아보자.’라며 답을 했습니다.”라며 말한 김덕신 작가는 그 당시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지금의 환경위기는 어른들의 책임이다.’라는 외침도 강한 충격과 책임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계기로 김덕신 작가는 우리가 만든 작품을 어른에게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소비문화와 익숙한 편의주의가 불러온 폐단을 김덕신 작가가 먼저 해결해 보고자 나름의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아름답게 보존하고 건강하게 지켜 미래세대를 위해 물려줘야 할 의무를 먼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후 비안도와 야미도의 두 섬에서 아이들과 함께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고, 섬마을 선생님에서 본격적으로 환경작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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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강사로서 섬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던 김덕신작가는 아이들과 바닷가 쓰레기를 주우며 모았던 부표와 페트병으로 왕눈이 개구리와 꽃을 만들어 학교 담장을 장식한 것이 처음 재활용품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페트병을 두 동강이 내어 병의 머리 부분과 밑 부분을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고 다듬어 펴주면 꽃을 두 송이 만들 수 있어 비교적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만들 수 있다. 특히 과거에는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와 조약돌을 주었는데, 지금은 출처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과 유리 조각 등의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더더욱 이들을 재료로 한 작품들을 통해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환기해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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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품으로 작품을 만들면 소재의 한계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김덕신 작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소재가 무궁무진하죠. 길가에 굴러다니는 빈 병, 과자 봉투, 빈 상자는 물론 돌, 나뭇가지, 솔방울을 비롯한 각종 나무 열매나 씨앗, 심지어 풀꽃이나 모래, 흙까지도 재료가 되어 작품의 영역은 물론 사고력까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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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늦은 가을, 비안도와 야미도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바다 쓰레기를 활용한 작품전인 ‘섬·섬옥수’ 전시가 열렸다.
김덕신 작가는 “바닷가에 널려있는 생활 쓰레기와 파도에 떠밀려온 방대한 양의 해양 쓰레기를 보며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이 절망했는데, 이를 극복하며 작품을 같이 만들어야 했던 점이 어려웠어요. 그러나 쓰레기를 줍거나 작품 만드는 과정은 학교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보람과 재미도 있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섬·섬옥수’ 전시의 반응은 예상외로 폭발적이었다. 특히 지역 주민들과 기관 및 단체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SNS를 통한 홍보로 환경작가의 행보가 본격 시작되었다.
이후 2020년에 열린 ‘부스럭 부스럭’ 전시는 폐비닐을 압축하여 물감 사용을 전혀 하지 않고 작품을 제작했다. 폐비닐을 소재로 사용한 것은 뱃속 가득 비닐을 삼킨 채 죽어가는 바다생물을 떠올리며, 인간으로서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작가로서 나름의 방법을 모색해 작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비닐만의 색상 그대로 전통색인 오방색을 표출하고, 항아리, 장독대 안에 들국화, 고마리, 엉겅퀴 등 예쁜 꽃들로 표현했다. 이를 통해 김덕신 작가는 자연과의 조화, 공생 가능성에 대해 성찰하며 생명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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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신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유혹’ 시리즈가 꼽힌다. 2021년 ‘음성품바재생예술체험촌’의 초대로 작품 ‘유혹1 미끼’를 전시회에 출품했다. 유혹 시리즈는 바닷가 쓰레기 중 버려진 낚시 미끼와 폐그물을 활용한 설치작품이다. 현재 작품 ‘유혹2 사탕발림’을 작업 중이다. 버려진 과자, 사탕 봉투를 바느질로 이어 만든 대형 설치작품으로 가로 1m, 세로 6m에 달한다.
“바닷가 쓰레기를 줍다 보면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낚시도구들이 바다 생물에게 주는 고통이 얼마만큼 큰지, 또 인간이 밟거나 걸려 다치는 것 외에 1년에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플라스틱을 섭취하며 체내에 축적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였던 미끼가 어쩌면 사람들을 유혹하고 편리함에 빠져들게 한 플라스틱의 유혹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미끼를 유혹의 주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유혹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려고 합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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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에서 나그네의 겉옷을 벗긴 건 거센 바람이 아닌 따듯한 햇살이다. 김덕신 작가는 각 환경 단체의 전투적 캐치 플레이나 집단적인 과격 행동은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저는 미래세대를 위해 저만의 특기와 재능과 색깔을 살려 제가 먼저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라며 재활용품으로 작품을 만들고, 수업을 하는 것이 부드러운 권유로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일상에서도 ‘아나바다’의 삶이야말로 지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애쓴다. 예컨대 옷도 아껴 쓰고, 나눠 주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남은 건 분해해서 단추, 리본, 자크, 라벨 등을 떼어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고 남은 천은 부위별로 잘라 머리핀, 브로치 등을 만들어 활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며 웃었다.
지금까지 바다와 땅에서 버려지는 소재를 재활용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원순환의 중요성과 환경보호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고, 향후 다양한 환경정화 활동을 이어나갈 김덕신 작가의 미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