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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역사는 세월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역사의 중심에 서서 비철금속 제련 산업을 이끌던 장항제련소는 한 때 영광의 시절을 누리며 반짝였지만, 이제는 오염으로 얼룩진 환경을 회생하며 지난날을 고찰해 보게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난날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재의 시간 위에 정리해 나간다. 그래서 같은 역사 속에 있었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누군가에게는 아픔의 흔적으로 자리매김한다. 일제 수탈에서 벗어나 산업화의 핵심 지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리고 환경문제를 바로 잡아 국제적 생태환경 거점으로 거듭날 장항제련소의 ‘변화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서천군 장항읍은 1900년도 초반 일제가 충청도 지역의 쌀과 자원을 반출할 목적으로 바다를 메워 조성한 지역이다. 그곳에 위치한 장항제련소는 일제강점기 3대 제련소(장항제련소, 원산제련소, 흥남제련소) 중 하나로, 당시 일제는 이 제련소를 설립하기 위해 1931년 장항선을 개통하고,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장항제련소를 준공 그리고 1938년 장항항을 개항하면서 시설을 확충했다.

일제가 장항을 제련소로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1929년 항만 개항으로 항만 이용에 장애가 없다.
- 1931년 장항선(당시 경남선) 철도 개통으로 육로 수송이 용이하다.
- 중심부에 있는 높이 95미터의 바위산(전망산)은 배연시설 설치에 적격이다.
- 중간의 간석지를 매립하여 1만평 이상의 광장을 조성하면 저정광으로 활용 가능하다.
- 연안 접지에 제련 스러그와 기타 잡물을 버릴 수 있고, 매립 효과도 거둘 수 있다.
- 지질 조사 결과 암반이 견고하여 철제 공장 및 구축물, 광석 적치에 용이하다.

식민 통치자에게는 천혜의 입지 조건인 셈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증설된 장항제련소는 1936년 1월 8일 하루 광석처리 능력 30톤의 용광로에 불씨가 붙여졌고, 해발 95미터의 전망산 정상에 세운 91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련 설비와 2기 건설사업이 마무리된 이듬해 4월에는 200톤 용광로에 월산 금 150kg, 은 1000kg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의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출발한 장항제련소는 해방과 함께 ‘장항제련소’로 국가에서 운영하였으며 1962년에 한국광업제련공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972년 민간기업이 인수하여 민영화하였으며, 1982년 울산에 온산동제련소가 태어나면서 이에 합병되었다.

주로 금과 구리를 제련하던 장항제련소는 설립 당시 연산 1천 5백 톤의 소규모 제련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해방 후 계속 확장되어 1974년 1만 5천 톤, 1976년 5만 톤 규모로 확장되었다. 국내 유일의 비철금속제련소인 장항제련소는 60, 70년대에 경제개발을 추진하던 당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로 인해 장항항은 1964년 국제 무역항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는 인구 14만 명을 웃돌며 융성의 시기를 구가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장항의 경제를 움직일 정도로 장항제련소 월급날만 되면 장황읍은 평소와 다른 활기를 띠며 활황기를 누렸다. 그래서 장항제련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산업역군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했으며, 농촌이 대부분이던 서천군에서 그들은 성공한 삶을 누렸다.

장항제련소는 그 당시 진남포·흥남 제련소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제련소 중 하나로 아시아 최대 높이의 산업시설이었다. 하지만, 성공 가도의 길을 달릴 줄만 알았던 장항제련소는 관련 산업이 점차 쇠퇴하고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산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은 수십 년간 이어진 매연과 각종 중금속 배출로 인해 크게 오염되었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에서는 기준치를 크게 뛰어넘는 중금속이 검출되는 등 제련 공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9년에는 매연이 발생하는 용광로와 제련 공정이 폐쇄되기에 이르렀고, 오랜 시간 타오르던 용광로의 불이 꺼지고 굴뚝이 호흡을 멈추며 장항제련소의 영광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1989년에 운영을 중단한 장항제련소는 폐쇄 당시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했다. 토양은 중금속 오염이 심각했고, 1급 발암물질인 비소도 검출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와 충남도, 서천군은 종합대책을 토대로 총 970억 원을 투입해 중금속 오염토지 110만4,000㎡를 매입했고, 이후 2013년부터 8년간 1,941억 원을 들여 주변 오염된 토지를 매입해 정화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서천군 옛 장항제련소 일대 브라운필드(Brownfield, 폐쇄된 산업 지역을 말하며 보통 환경오염 문제로 재개발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를 국제적 생태환경 거점으로 탈바꿈시키는 밑그림을 그려냈다. 우리나라 최초 생태복원형 국립공원이자 한국형 뉴딜정책 추진 상징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옛 제련소 및 주변 지역 생태계 복원·보전체계 마련, 생태·역사·문화 자원 활용 스마트 생태관광지구 조성, 국가생태산업단지 연계 해양·생태 연구 선도기지 등을 구축하기로 했다. 사업 기간은 2024~2029년이며 사업 대상 면적은 56만㎡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장항제련소
나무위키 장항읍에 위치한 종합비철금속제련소
장항제련소의 굴뚝..변신은 무죄| TJB 대전·충남·세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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