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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코끝 시린 겨울바람에도 갈대들은 무리를 지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차디찬 갈대 향기 가슴 가득 머금고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면, 계절이 주는 경이로움에 대해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하게 된다. 지난 계절의 수고로움을 두터운 겨울로 감싸 안고 ‘지난 1년 수고 많았구나’라며 토닥이며 잠을 재우는 것만 같다. 그래서 겨울은 차갑지만 정감이 느껴지고, 무겁지만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엄마 같이 그리워지곤 한다. 오늘은 그리운 이 손 꼭 붙잡고 동백꽃 향기 흩날리는 서천으로 겨울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옆으로는 금강이 여유롭게 흐르고 드넓은 갈대밭이 쭉 펼쳐져 있는 신성리 갈대밭에 도착했다. 신성리 갈대밭은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 하나이며 서천 9경 중 한 곳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도착하자마자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흔들 차라라 차라라 은은한 소리로 잘 왔다고 반겨주었다. 바쁜 일과 삶에 쫓겨 빠른 리듬에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느리면서도 여유로운 갈대들의 합창을 한없이 듣고 싶었다.



갈대들이 금강을 품고 겨울색을 내었다가 햇빛을 품고는 황금색을 내었다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길래 더 가까이 그 모습을 느끼고 싶어 갈대 사잇길을 걸었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며 사르르 없어진다. 잘 만들어진 스카이워크를 걸으며 내려다보는 갈대의 쓸쓸한 빛깔이 또 어쩌면 이렇게도 화려하게 느껴지는지 참 매력적이었고 그 군무에 눈이 즐거웠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신성로 500


두 번째 여행지로 정해놓은 마량리 동백나무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이곳의 동백은 4월이면 만개하는데 12월에도 하나둘씩 피어난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되었고 서천 팔경 중 하나이며 아름다운 동백나무 숲에 자리한 동백정에서의 일몰이 장관이라고 한다.

저렴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서니 동백정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보였다. 둘러 가는 길도 보였으나 바다 전망이 궁금하여 서둘러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꽃망울을 터트린 예쁜 동백꽃들이 가까이 있어서 조심조심 오른다. 천연기념물이라 더욱 주의하며 걸었다. 한겨울, 이렇게 짙푸른 잎과 붉은 꽃으로 장식하고 계단을 오르는 나를 환영해 주는 곳이 또 있을까 싶어 흥이 오른다. 극진한 대접을 해주는 동백꽃들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동백정이 보이니 급할 것도 없는데 다리는 서두르고 싶은 것 같다. 어서 가라 재촉이다. 여유로운 여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또 먹었는데 ‘동백정 바다뷰’가 궁금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광경을 좋아하는 편이라 빨리 보고 싶었던 걸까? 동백정 양쪽으로 보이는 바다 모습에도 감질맛이 난다.

잠시 멈춤! 나의 인내심을 불러 세워놓고 사진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이 가파른 계단을 발을 굴러 재촉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소중하고 멋진 모습은 아껴두었다가 마음껏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바다를 품고 있는 동백정의 모습도 담고 싶었다. 듬직한 장수처럼 동백나무들을 지키며 굳건히 때로는 묵묵히 그곳에 서 있는 동백정. 한숨 크게 들이키고 이제 동백정이 품고 있는 바다를 보러 그곳에 올랐다. ‘역시 바다는 겨울바다’ 라고 또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겨울 바다는 특유의 슬픈 색이 있다.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뭔지 모를 차가운 빛에 같이 마음이 시려지다가도 그 시린 빛을 보여준 바다가 또 고맙기도 하다. 이 복잡미묘한 마음을 담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진에 담기지 않는 것이 참 신기하다. 동백정에서 오력도라는 작은 섬이 보인다. 옛날 어떤 장수가 마량에서 연도로 건너다닐 때 뛰어넘다가 신발 한짝이 떨어져 섬이 된 것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짚신 한 짝을 닮았다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충남 서천군 서면 서인로 235번길 103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313-4), 동백나무숲 매표소 041-952-7999


동백정에서 일몰도 장관이라지만 해넘이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마량진항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마량진항은 ‘비인항’에서 최근 명칭이 변경되었고, 1816년 마량진에 정박한 영국 함선으로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을 전해 받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아름다운 곳들을 둘러보느라 시간을 지체했는지 벌써 해는 빠르게 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하늘은 붉어지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라며 포근히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 들었다. 노을을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으면서도 꼭 삶의 마무리가 저렇게 빠르게 올 것 같아 인생의 계획을 다시 세워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름답고 찬란한 것은 늘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


2022년 12월 31일부터 2023년 1월1일 마량진항 해넘이와 해돋이 축제가 있다고 하는데 같은 장소에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참 신기한 경험일 것 같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서인로 58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339-12)
041-952-9123
(일몰)2022. 12. 31.(토) 17:28 (일출)2023. 1. 1.(일) 07:44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KASI) 참고

지난 해를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 서천의 겨울을 만끽하며 올해 마지막 계절에게 인사를 고하고, 다가올 봄의 온기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